영화음악-1950년대

우정 어린 설복/ Friendly Persuasion 리뷰 + 동영상 모음

김제건 2014. 8. 18. 17:11
우정 어린 설복/ Friendly Persuasion 리뷰 + 동영상 모음
1956년/제작 + 감독: William Wyler/주연:Gary Cooper + Anthony Perkins
음악: Dimitri Tiomkin/137분



'양보와 타협은 절대 없다(Never Compromise)' 라는
특이하고 재미난 이름의 골프용품과 장비도 있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어느 퀘이커 교도(Quaker)
한 가정은 정말로 세상과는 절대로 타협을 하지 않고
(Never Compromise), 오로지 자기들이 믿는 신앙의
교리대로만 살아가는 듯하다.
철저하게 비폭력을 수호하는 평화주의자들,
그래서 남들이 때리면 그냥 얻어맞고.....
죽이면 또 그냥 죽고 마는......그래도 그 모든 것을
전부 다 하나님의 뜻으로만 생각을 한다고 한다.



주먹을 쥐지 않으니 총을 잡을 리가 없고 그러다 보니
오늘날에도 군대 징집문제가 이들에게는 큰 걸림돌이지만,
병역거부자로 감옥에 보내지면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 의해서도
‘여호와의 증인’과 함께 이단으로 취급받고 있다는데,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의 역사(1650년경 창설)도
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면 전쟁 때에는 과연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답이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가 된다.



1862년, 미국 인디애나의 한 시골집.
남북 전쟁(1861-1865)의 소용돌이가 아직까지는 이들에게
미치지 않는 가운데, 다섯 명의 식구들은 퀘이커교도로서
그저 평화로운 삶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일날(이들은 ‘The First Day’ 라고 함)에
그들만의 특별한 모자(위의 사진)와 함께 잘 차려입고
마을의 교회에 다녀오는 일 이외에는 별로 일도 없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의 줄거리 자체도
시작 후 (무려) 100분이 될 때까지
‘뜰에서 키우는 영리한 거위가 막내아들을 괴롭히는 일’,
‘마을의 축제(아래 사진)에 가서 큰아들이 그저 얻어맞고
오는 일’, ‘큰 딸의 첫사랑 이야기’,
‘부인이 반대를 하는데도 풍금을 집에 들여놓는 일’
‘교회까지 마차로 빨리 가기 경주를 하는 일’
외는
그리 특별하고 심각한 에피소드도 별로 없다.
(그러나 인디애나 남부에서 촬영을 시작했던 이런 잔잔한 시골의
평화스러움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는 드디어 이 신앙심이 깊은
제스(Jess Birdwell-Gary Cooper, 1901-1961, 몬태나)
평화롭던 가정에도 깃들기 시작한다.
남군의 노략질에 이웃의 집과 마구간이 불타오르고,
그 시커먼 연기는 바로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롭게 장작이나 패는
이 제스에게 이웃들은 어서 빨리 총을 잡고
전쟁준비나 하라고 야단들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교리를 지키려는
이 제스 버드웰 부부는 그저 무능한 겁쟁이로만
이웃들에게 비쳐지는데, 이에, 젊은 큰아들,
조쉬(Josh-여호수아, Anthony Perkins, 1932-1992. 뉴욕)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총을 들고 자위 민병대로
자원을 하고(교리에 위배), 강가의 전투에 참가를
하여 울면서 적군을 죽이게 된다. (아래 사진)



잠시 후, 큰 아들을 끝내 말리지 못하여 비통해있는
이 버드웰 부부 앞에 조쉬의 애마만 홀로 돌아오자,
가장인 제스도 총을 들고 전쟁터로 향하게 되는데,
이를 지켜보는 신실한 퀘이커 교도인 부인(여 목사님),
일라이자(Eliza-Dorothy Mcguire, 1916-2001, 오마하)
(아래 사진)의 억장도 무너져 내린다.
그런 와중에 남군 병사들은 식량 약탈을 위해
부녀자만 있는 이집에도 쳐들어온다.
한편 친하던 이웃들이 싸늘한 시체로 변한 걸 강가에서
목격하는 제스는 자기를 죽이려는 어느 한 적군과 싸워
결국 사로잡게 되지만, (교리대로) 죽이질 못하고
그냥 돌려보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져있는 아들
조쉬를 강기슭에서 발견을 하고 집으로 구해오게 된다.



교리와 관습에 충실한 이 퀘이커교도들은 사용하는
언어에 있어서도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이들은 ‘You‘ 라는 단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데,
일상대화에서 평범하게 무척이나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이 단어를 항상 시적인 고어, ‘Thee’로 대신 말하다보니
듣는 (현대인 인) 우리들도 짜증이 날 때가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이 들까?
(이 영화의 주제곡 제목 참조)
그런 그들이 교리에 위배되는 총을 잡고 전쟁터로 가는
일과 또 비록 적군이지만 (울면서) 살인을 한 일에 대해
바로 이 영화는 이들이 안고 있는 세상살이의 한계점을
관객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을 잡는 일과
누가 죽더라도 그저 무폭력 무저항으로 가만있는 일 중에서
과연 하나님께선 어느 쪽을 지지하시겠냐는 질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무슨 반전 영화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다.)



존 웨인 (John Wayne. 1907-1979, 아이오와)과
더불어 서부 시대영화의 영웅으로 각인이 된
게리 쿠퍼(Gary Cooper. 1901-1961, 몬태나-위의 사진)
아버지 역할은 이 영화와 분위기가 무척 비슷한 영화,
‘셰난도어(Shenandoah.1965)‘에서의 또 다른 아버지,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 1908-1997, 인디애나)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잘 어울리는 적격 캐스팅이었다.
한편 영화계에 막 데뷔한(1953년) 앤소니 퍼킨스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듯한 풋내 나는 큰 아들역의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다.
(아래 사진).
[이런 스타일의 연기가 결국 그를 ‘이수(Goodbye Again. 1961)’
‘죽어도 좋아(Phaedra. 1962)’까지 출연을 하게 해,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큰 인기를 얻었었다.]



서부 영화음악을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난 러시아 이민 출신의
드미트리 티옴킨(디미트리-Dimitri Tiomkin. 1894-1979, 우크라이나)
또 다시 주제곡을 만들었는데, 그가 만든 수많은 명곡들,
‘하이 눈(High Noon. 1952, 아카데미상 수상 곡)’,
‘비상 착륙(The High And The Mighty. 1954, 아카데미상 수상 곡)‘,
‘자이언트(Giant. 1956)’,
‘오케이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 1957)‘,
‘로하이드(Rawhide. 1959)‘,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
‘알라모(The Alamo. 1960)‘
등등의 주제곡들 못지않게,
‘내가 사랑하는 그대(Thee I Love)‘ 라는 곡도
상당히 유명한 곡으로서 드미트리 티옴킨 음악의 전반적인
특징의 하나인 그 따스함이 참으로 잘 배어 있다
1957년도 미국 아카데미상의 최우수 음악상의 후보작이기도 했던
이곡은 특히 당시의 유행 음악계에서 최고의 미성가수로 손꼽히던
팻 분(Pat Boone. 1934, 미국 잭슨빌)
불러 첫 장면에서부터 잔잔하게 흘러나오면서,
평화로운 버드웰 가족의 일상을 대변하였는데(아래 노래 +가사)
연주음악으로도 1960년대까지 상당한 인기를 얻었었다.

* Pat Boone 의 ‘Thee I Love’:


Thee I love, more than the meadow so green and still
More than the mulberries on the hill
More than the buds on the May apple tree, I love thee
Arms have I, strong as the oak, for this occasion
Lips have I, to kiss thee, too, in friendly persuasion
Thee is mine, though I don't know many words of praise
Thee pleasures me in a hundred ways
Put on your bonnet, your cape, and your glove
And come with me, for thee I love






총잡이라든가 무법자들이 출연하지 않고,
또 막 쏴죽이고 죽는 그런 핏빛 나는 서부 영화가
아니면서도, 한 퀘이커 신도의 가정을 통해 그 줄거리
전개에서 넉넉한 서부 영화의 낭만을 전해 주는 것이
역시 (이번에는 제작까지 직접 한) 거장 감독,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1902-1981,독일)답다고
할 수 있겠는데,
‘서부의 사나이(The Westerner. 1940)’,
‘빅 컨츄리(The Big Country. 1958)’
과 함께
그가 만든 몇 안 되는 서부극의 수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여하튼, 이런 잔잔한 서부극의 맥이
할리우드에서 끊어진지도 무척이나 오래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희귀성 때문일까?
지금은 더욱 더 귀한 작품이 되었다.
그나저나,
이제 이런 스타일의 서부영화는 결코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일까?



* 관련 동영상 모음:










revised. June.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