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1960년대 상

달콤한 인생 / La Dolce Vita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김제건 2012. 3. 5. 11:54
달콤한 인생 / La Dolce Vita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1960년/각본+감독: Federico Fellini /주연: Marcello Mastroianni 외
음악: Nino Rota / 178분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천재 예술가들 중에는 괴짜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는데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1920-1993, 이태리)
역시도 그 중에 한 명이었음은 누구도 부인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촬영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물론이고, 촬영 직전까지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아 곤혹을
치루 게 한다는 게 도대체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그러나 대본을 좀 보자는 배우들의 요구에 대본 대신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
함께 사용해보라는 말을 했었다는 펠리니.
오늘 날의 시스템으론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거기다 제작자가 닦달을 하면
말도 안 되는 한 장짜리 대본도 만들었었다는 그는
그렇게 (원시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의 자기 스타일로만
영화들을 만들어왔다고 하는데,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기계같이 움직이는 오늘날의
영화들과 비교를 하여 과연 어떠한 평들을 받고 있는가?



“나는 그의 손에 의하여 잘 작동이 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였다“
고 직접 회고한 바도 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괴짜 감독의 요구에 마치 그의 오른팔
이라도 되는 양, 서로 말은 안 해도 척척 손발이 맞았다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Marcello Mastroianni. 1924-1996, 이태리)

함께 만든 이 작품도 그런 식의 제작 과정이야 어떻든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펠리니의 틀림없는 걸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니,
그 감독이나 그 배우나 다 ‘위대한 천재들’ 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촬영시간이 부족한데도 하루 종일 앉아 엑스트라들까지
일일이 직접 캐스팅을 하고, 목소리 더빙 때는 싱크가
맞지 않더라도 마음에 안 드는 대사는 과감히 고쳐버리고,
거기다 음악의 믹싱까지도 자신이 직접 기계에 손을 대는
그 꼼꼼함은 오히려 기행에 더 가까운듯한데,
거기다 영화의 전체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예고편부터
찍는다던가, 또 찍은 그 예고편의 필름을 정작 본편의
끝 장면(‘8과 1/2’경우)으로 사용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펠리니는 분명 평범한 ‘보통 사람‘은 아닌 것이다.



우리들이 (잠자다 꾸는) 꿈이야말로 우리들의 유일한
현실일 뿐이다
라는 그의 말이
펠리니 영화들의 성격을 한마디로 대변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펠리니이기에 유치원 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인생을 쉽게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이라고
제목으로 붙일 수가 있었고, 또 원래의 제목도 아주 기나 긴,
‘아무리 인생이 잔인하고 끔찍해도 관능적이고 달콤한 순간은
드물긴 하지만 반드시 있다‘
이었다고 하니
이 짧지 않은 문장 하나로도 작품의 성격을
약간은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거기다 그런 숨어있는 듯한 ‘달콤한 인생’을 잘 찾아내고
또 잘 즐기는 것은 결국 현명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말도
덧붙였다니,
제목부터가 (이 영화는) 그냥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 바람둥이 신문기자.
마르첼로(Marcello Rubini-Marcello Mastroianni,
1924-1996, 이태리)

직업상 영화배우들을 비롯한 로마의 상류층들과
자주 어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는 그와 동거하고 있는
엠마(Emma-Yvonne Furneaux, 1928, 프랑스)
언제나 불평만을 늘어놓게 되고, 심지어는
(결혼을 요구하며) 자살기도까지도 하는데,
그러든 말든 태평스러운 이 마르첼로는
마달레나(Maddalena-Anouk Aimee, 1932, 프랑스)같은
여성들이나 또 촬영차, 미국에서 온 여배우,
실비아(Sylvia-Anita Ekberg, 1931, 스웨덴)등과
어울리면서 (겉으로는 아주 즐거워 보이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차츰 인생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사건들이 하나 둘씩
연속해서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다는 그 외진 곳에 폭우를
무릅쓰고 몰려드는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새삼스럽게 외로움을 느끼는 마르첼로.
어려서는 얼굴조차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항상 바빴던
아버지(Annibale Ninchi, 1887-1967, 그리스)
로마로 상경을 하면서 부자간의 상봉도 하게 되고,
또 클럽에서 밤을 세워가며 술을 함께 마시다가
(2차로 간) 젊은 클럽 댄서의 아파트에서는
새벽에 잠시 쓰러진 아버지를 보면서 그는
마치 자신의 ‘씁쓸하고 달콤하지 않은 인생’의
미래상을 보는 듯도 하다.
그리고 부러울 것 하나도 없어보이던 돈 많은 친구,
스타이너(Steiner-Alain Cuny, 1908-1994, 프랑스)
자살 사건도 그를 의아하게 만들고 또 괴롭게 한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마르첼로.
그러나 가진 건 돈밖에 없는 로마 상류층의 밤샘 파티에
오늘밤에도 참석을 하고, 난잡한 그 분위기에서 그는
또 다시 그 ‘달콤함(The Sweet)’을 찾는다.



팔을 활짝 벌린 예수의 석상을 헬리콥터에 매단 채
(허물어져 가는) 콜로세움 상공에서부터 경제적인 부흥기를
맞아 신축건물들이 속속 올라가던 당시의 로마 시내 상공을
거쳐 바티칸으로 운반하는 영화의 인상적인 첫 장면과
(위의 사진)(아래 동영상)
밤을 새운 상류층 남여들의 난잡한 파티에 참석한 후,
새벽녘에 헝클어진 몰골로 바닷가로 나가서
어느 식당에서 만나 천사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
(순수하고 성결한) 어린 소녀를 쳐다보며 (파도소리에 묻혀)
전혀 들리지도 않는 대화를 잠시 나누는 끝 장면은
관객들뿐만 아니라 많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나름대로
여러 가지의 해석들을 하게 만들었다. (아래 동영상)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상숭배를 비롯한 현시대의 여러 종교적 가치를 상징한다는
(대사가 전무한) 첫 장면에서부터 무언의 암시를 시작하여,
사치와 향락에 빠져 그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사는 듯 한 상류 계급의 여러 형태의 파티 장면들(영화에서
참 여러 번 등장을 한다)과
또 그 속에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마르첼로라는 (따져보면
참 별 볼일이 없는) 한 캐릭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염세적이고 우울하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설교적이지 않으면서
세 시간 동안이나 지루하지 않게) 펠리니는 무언가를
전달 해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무언가에서 얻는 지혜는 펠리니 감독의 말대로
보는 사람들마다의 자유로운 해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가 있을 것이다.







1942년부터 작가 생활을 하면서
배우, 알도 파브리찌(Aldo Fabrizi, 1905-1990)의 조수 생활과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1906-1977, 이태리)의
조감독으로서 감독직과 인연을 맺게 된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그러나 정작 감독만은 정말로 하기가 싫었다고 한다.
그저 당시의 편한 직업이었던 만화도 함께 그리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만족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영화의 스토리보드도 자기가 직접 만화로 그리는
경우도 많았고, 1973년의 ‘아마코드(Amarcord)’에서는
아버지의 대머리위에 혹을 직접 붙인다는 식의 만화적인 발상이
펠리니의 특기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땜 빵(?)'으로 어쩌다 시작된 그의 몽상가적 작가주의
감독 생활은 유별나게도 그의 인생이 담긴 자전적인 요소의
많은 명작들을 만들어 내었다.
특히 그의 자전적인 영화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8과 1/2(1963)’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영화 역시도 마르첼로라는 인물을 통하여, 우리들은
젊은 시절의
펠리니를 간접 조명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펠리니가 1960년에 만든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는 이태리 영화가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을 때라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어쨌든 그는 ‘길(La Strada. 1954)’의 대성공에 이어
이 작품으로도 다시 한 번 더 그의 놀라운 재능을 과시하며
이후 1990년까지 거장으로서의 탄탄대로를 걸어가게 된다.



영화의 음악은
펠리니의 초창기에 실패작이라는 혹평들을 무지하게 받았었던
1952년도의 ‘백인 추장(Lo Sceicco Bianco)’ 이후부터
줄곧 손발을 맞추어 온 펠리니의 영원한 짝꿍 (Collaborator),
니노 로타(Nino Rota. 1911-1979, 이태리 밀라노)
역시 만들었는데, 같은 해에 발표된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의 주제곡도
대 성공을 거두었지만, 니노 로타 역시 그 당시에는 펠리니
못지않게 대중적인 인기가 대단한 작곡자겸 오케스트라의
리더로서, 이미 거장이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당시로서는 특이하게도 2개의 주제(Theme)를
사용하면서 오리지널 스코어(OS)를 만들어 내었고,
영화의 전반과 후반에 각각 다른 테마곡들을 등장시켰는데,
로마로 상경을 한 아버지와 자리를 함께 한 나이트클럽에서
광대가 나와 풍선공연을 할 때 트럼펫으로 부는 곡이
전반부 테마(Theme-제2의 주제곡)곡이다.
(1954년도의 ‘길(La Strada)’의 트럼펫 주제곡과 비교가 된다)
이곡은 또 미국에서 온 여배우, 실비아와 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트레비 분수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아래 사진)을
비롯하여 영화가 시작되고 약 두 시간 동안, 재즈를 비롯한
여러 스타일의 변주를 통하여 반복이 계속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을 하며 비사노의 고성에서의 파티 (유령잡기)
시퀀스에서부터 엔딩 크레디츠까지 역시 여러 번 반복이 되는
두 번째 주제곡이 오히려 이 영화의 메인 테마(Main Theme)곡
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영화의 전반부에 나오는 트럼펫 연주의 첫 번째 주제곡보다
좀 더 정통적인 관현악 스타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이곡은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마르첼로의 고뇌를 대변하듯
즐겁기도 하지만 때론 슬프게 들리기도 한다.
(영화음악의 작곡에 관하여 펠리니 감독은
로타에게 항상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요구를 하였었다고 하는데,
오래된 오페라 같으면서도 새로운 느낌으로,
강한 듯 하면서도 약하게, 또 즐겁지만 슬프게라는 식의
그의 억지 같은 요구에 이 주제곡들은 참으로 잘 화답 한 듯하다.)

이 두 개의 주제곡들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이태리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들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2003)'
‘매치스틱 맨(Matchstic Men. 2003)'에도 인용(삽입)을
할 정도로 영화 음악의 명곡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삽입곡들로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Toccata & Fugue In D Minor’
같은 클래식 음악도 마르첼로의 친구인 스타이너가 성당에서 직접
파이프 올갠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잠깐 들을 수가 있었지만,
신나는 음악이 결코 빠질 수 없는 수많은 파티 장면에서는
마리오 란자(Mario Lanza)가 부른바 있는
영화, ‘로마여 안녕(Arrivederci Roma.1958)’의 주제곡이나
페레츠 프라도(Perez Prado)악단의 1958년도 히트 곡,
‘파트리시아(Patricia)’(아래 음악)같은
당시에 로마에서 인기를 얻던 유행음악들도 삽입곡으로
사용을 하면서 이들의 파티가 ‘달콤한 인생’처럼 보이도록
간접 표현 한 것도 이채롭다.
이 명곡, ‘파트리시아’
아버지와 함께 하는 나이트클럽 장면과 끝 장면에서
의미심장하게 등장을 하는 어느 바닷가 식당의 소녀 종업원을
처음 만났을 때도 쥭 박스(Jukebox)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파티장면에서 나오는 그 유명한
‘징글 벨(Jingle Bell)’도 편곡이 상당히 재미있게 되어있다.







영화를 만들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만나 대화를 무척이나
많이 나누었다는 니노 로타와 같은
친한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듯이 만든 영화야 말로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 페데리코 펠리니와 그의 짝꿍,
이 니노 로타의 만남은 오늘날 다시 생각해보아도 참으로
환상적인 궁합이 아닐 수가 없는데,
이런 좋은 선례가 이들의 후배들인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 만은 분명하여,
이들 ‘멋쟁이 이탈리언들’ 덕분에
우리들의 정서가 그 동안에 상당히 풍요로워진 것만은 틀림없기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사람들의 좋은 인간관계는 비록 작게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알게 모르게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며, 그 힘 역시도 막강함을
다시 실감한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흔히 쓰이는 '파파라치(Paparazzi)'라는 용어도
이 영화 속의 인물, 파파라초(Paparazzo)에서 기인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역사에 문화적으로 공헌한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일까?
펠리니의 고향인 이태리, 리미니(Rimini)의 시당국은
시의 공항의 공식명칭을
페데리코 펠리니 국제공항(Federico Fellini International Airport)
이라고 명명하였다.

사족:
제목의 사용을 허락받고 인용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또 영화에 관해서도 그 수준이나 내용 등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마음이 전혀 없지만, 2005년도에 개봉한 동명 타이틀의 어느
우리나라 영화는 비록 영화의 주 무대인 어느 술집의 간판이
그렇다 할지라도 그 영화에 붙일 마땅하고 신선한 제목이
과연 그렇게 없었을까?
아무리 외국의 영화제목들을 손쉽게 가져다가 붙이는 게
오늘 날의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페데리코 펠리니가
하늘에서 우리나라의 그 영화(제목)를 보았다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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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ed. Ap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