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1950년대

길 / La Strada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김제건 2012. 2. 19. 18:07
길 / La Strada 음악적 리뷰 + 동영상 모음
1954년/ 각본+감독: Federico Fellini/주연: Anthony Quinn + Giulietta Masina
음악: Nino Rota/흑백/107분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너무 급속도로 줄어들어
이제 서야 뒤늦게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자식들을 하나 둘만 낳아 기르는 요즈음의
이런 풍조의 가장 큰 이유는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점 외에도
아마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발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어디 그랬었는가?
자식들을 많이 낳아도 그중에 몇 명은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또 전쟁터에서도 죽는 등........
그래서 자식들을 많이 낳지 않으면 대(代)를 이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는지, 네 다섯 명의 자식들은
예사였는데,
그러다보니 정말로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그 시절에 살림의 형편은 이 작품이 탄생된 시절의
이태리나 우리 한국이 별반 차이가 없는듯하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젤소미나 (Gelsomina-Giulietta Masina, 1920-1994, 이태리) .
역시 많은 형제들 속에서 먹고 살기가 힘이 들어
어느 떠돌이 광대에게 (푼돈에) 그만 팔리게 되는데,
그렇게 불쌍하던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그 당시에
또 얼마나 많았었던가?
한국 전쟁을 직접 몸으로 치룬 세대들 중에서도
특히 피난을 갔던 많은 분들이 그들의 비슷한 운명을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관람을 하였다는 이 영화는
그래서 오늘날 풍요 속에서 자라난
‘한국전쟁 전후 제 3-4 세대들‘에게
꼭 한번 씩은 보라고 권장하고픈 작품의 하나이다.
6.25 한국 전쟁 때 먹을 게 없어서 무척 고생하였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그럼, 라면을 먹으면 되지“
라고 답했다는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먼 남의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리겠지만,
그러나 바로 이 영화야말로 우리나라 어르신 세대들께서
살아오신 인생 이야기와 아주 흡사 한 것이다.



쇠사슬을 가슴으로 끊는 특기의 떠돌이 광대, 차력사,
짬빠노 (Zampano-Anthony Quinn, 1915-2001, 멕시코)
삼륜 오토바이(트럭)를 타고 시골 구석구석을 전전하며
살아가는데, 그동안 쭉 같이 다니던 젤소미나의 언니,
로사(Rosa)가 죽자 대신 젤소미나(Gelsomina)
당시에도 푼돈인 만 리라에 사고,
조금은 모자 란 듯 한 그녀를 회초리로 때리면서
조수로 교육시킨다.
그래도 마음씨 착한 젤소미나는 그런 현실에 잘 적응해
나가는데, 어느 날, 장난감 미니어처 바이올린을 켜는
젊은 나이의 곡예사,
마토 (Matto-Richard Basehart, 1914-1984, 미국)에게서
우연히 애수 어린 노래 한 곡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젤소미나 자신도 이곡을 직접
트럼펫으로 불게 되는데, 바로 이 곡이
그 유명한 이 영화, ‘길의 주제곡(Main Theme)’이다.







첫 장면에서부터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이 곡은
이렇게 단지 분위기를 띠우는 영화의 주제곡으로서만
아니라, 이 영화의 슬픈 이야기를 전개하는
전체 줄거리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도 설정이 되어있다.
영화 후반에 짬빠노가 길에다 버리고 온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사실도 이 노래를 빨래하면서 부르는
어느 여인을 통해서 나중에 알게 된다는 것 이다.
(그녀가 없는 그때서야,
비로써 그녀를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은 대부(The Godfather. 1972)
시리즈의 음악을 통해 대중적으로 더욱 더 알려진
이태리 영화음악의 대부(엔니오 모리꼬네의 영원한 스승),
니노 로타 (Nino Rota. 1911-1979, 이태리)
이미 1930년대부터 활약을 해 온 밀라노 출신의
영화 음악의 대가인데,
한동안은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감독
짝꿍(Collaborator)을 이뤄 수많은 작품을 함께 만들며
생전에 약 70편정도의 유명한 영화 음악들을 남겼다.
트럼펫 연주를 포함한 여러 악단들의 연주음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주제곡,
'길의 테마(Tema Del La Strada)‘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일명, ‘젤소미나(Gelsomina)’
라고도 불리지만, 언제 들어도 순박한 그 젤소미나의
슬픈 눈빛을 떠올리게 하는 ‘올디스 벗 구디스
(Oldies But Goodies)’의 잊을 수 없는 명곡중 하나인 것이다.





멕시코의 치후아후아(Chihuahua)에서 태어나고,
우여곡절 끝에 미국 LA로 이민을 와,
나중에 1937년부터 장인이 되는 유명한 감독,
세실 비 드밀(Cecil B. Demille. 1881-1959)
후원으로 1936년에 할리우드에서 데뷔를 하였지만,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던 조연급의 영역에서
앤소니 퀸(Anthony Quinn. 1915-2001)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이 할리우드가 아니라
바로 이 작은 나라 이태리의 작품이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작품에서부터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대중들에게
각인이 되기 시작하던 그는 2년 후에 출연한
‘노틀담의 꼽추(1956)’에서 다시 한 번
개성 있는 연기력을 인정받는다.
이후 또 다시 그의 행운의 대륙인 유럽의 작품,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 1965)’
1967년의 ‘25시’ 등을 통해
(특히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2001년에 타계하기 전까지 무려 158편의 영화에
다작 출연을 한 그로서도 이 펠리니의 작품은
너무나도 인상적인 영화였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었다.
(무식한 짬빠노의 역할을 앤소니 퀸처럼 더 이상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고향인 리미니(Rimini)의 초등학생 시절서부터,
서커스(보드빌-Vaudeville)를 너무나도 좋아해,
나중에는 아르바이트로 잠시 유랑극단(보드빌)에서
광대(Clown)일까지도 직접 했었다는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1920-1993)에게
직접 쓴 이 영화의 줄거리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자전적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1960)’이나 ‘8과 1/2(1963)’
그리고 ‘아마코드(Amarcord. 1973)'등에서도
수없이 등장을 하던 그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 젤소미나에게 노래를 배워준 청년,
마토가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태리 영화계의 큰 풍조로서
도피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현실 사회(상)의
사실적인 묘사와 또 평범한 사람들의
(허구가 아닌)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그 특징인
‘네오- 리얼리즘(Neo-Realism)‘
(이후 프랑스의 ‘누벨바그’에도 큰 영향을 끼침)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서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1902-1974, 이태리) 감독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 1948)‘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작으로도 손꼽히고 있지만,
정작 펠리니 자신은 이 시절서부터는 오히려
그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고
회고 하였었다.



1942년부터 작가로 시작하여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지만,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영화감독 생활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었다고 말하는 펠리니는
1950년부터 감독을 해온 이래, 이 영화로
1957년도 제 29회 미국 아카데미상의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Best Foreign Language Film)까지
수상을 함으로서 이태리 영화계에 너무나도 큰
경사를 안겨주었고, 그 자신 역시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이태리 최고의 작가 겸 감독으로 급부상을 하였었다.
이 페데리코 펠리니와는 1942년에 로마의 한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난이래, 1943년 10월부터,
만 50 년간 결혼생활을 함께 해 온 반려자,
줄리에타 마시나(Giulietta Masina. 1921-1994)
결코 배우 같지 않은 그 외모로
젤소미나로서의 인생 명연기를 펼쳤다.
1991년까지 출연하였던 그녀의 평생의 32편의
출연 영화들 중에서도 그녀의 실명을 직접 사용한
‘영혼의 줄리에타(Giulietta Degli Spiriti, 1965)’
못지않게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작품이
바로 이 영화였다고 한다.
그녀는 ‘여자 채플린’이라는 영광스러운
별칭도 이 작품으로 인하여 얻게 되었지만,
부평초와 같은 짬빠노와 젤소미나의 인생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펠리니와 마시나
이들 부부에게는 그들의 인생길에서 크나 큰
이정표와도 같았던 작품이었기에
더 더욱 이 영화가 소중하지 않았겠는가?
부부금실이 너무나도 좋았었다는 이들 부부는
연예인 같지 않은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1993년 10월, 펠리니가 죽을 때까지 무려 50년 동안
이어갔는데, 50주년 결혼기념일 다음 날에 펠리니가
떠나간 지, 6개월 후인 1994년 4월에 마시나도
그를 따라 함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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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ed. Jul.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