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1950년대

콰이 강의 다리/ Bridge On The River Kwai 리뷰 + 동영상 모음

김제건 2012. 2. 21. 17:57
콰이 강의 다리/ Bridge On The River Kwai 리뷰 + 동영상 모음
1957년/감독: David Lean /주연; William Holden + Alec Guinness +
Jack Hawkins /음악: Malcom Arnold/161분/70mm



70 밀리(mm)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좌우 길이가 대충 50야드는 족히 넘어 보이는 엄청나게
큰 스크린에 비쳐 지는 그 압도적이고 웅장한 영상은
문자 그대로 환상적이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이런 큰 스크린이 있는 대형 극장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아무리 시대의 조류라지만
유감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성의(The Robe 1953년)’라는 사극을 통해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라는 획기적으로 넓어진
화면이 나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1950년대의 미국 영화계의 신기술 발전 속도는
너무나도 빨라서,
1955년의 ‘오클라호마(Oklahoma)’의 촬영(65mm)을
계기로 본격적인 70 밀리(mm) 제작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그동안의 35 밀리(mm)로 한정이 되었던 영화의 세계가
드디어 화려한 변신을 한 것 인데,
흑백에서 컬러 영상으로 전환 하던 때의 문화적 충격
못지않았던 이 70mm 필름의 극장 상영은
당시의 우리나라의 장안에서도 큰 화제 거리가 되었었다.
바로 오늘날의 고선명 디지털 방송이 주는 감동보다도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았던 큰 감동을 느꼈던 것인데,
당시 이 70mm 영화 관람 이야말로 정말로 극장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고 또 역시 영화다운 영화를 제대로 보는구나
라는 느낌을 주었으며,
자칫, 오른쪽의 세로줄 자막을 오래 읽다가는 왼쪽의
화면에서 일어나는 장면 전환을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그래서 극장의 3-4층의 맨 뒷자리가 오히려 인기를 얻었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이런 대형 화면 영화들의 상영을 위한 서울 퇴계로의
대한극장 만한 곳도 당시의 한국에서는 또 없었던 것이었다.



큰 화면에다 큰 스케일의
대작(大作)을 만드는 걸로 유명하였던 영국출신의 감독,
데이빗 린 (Sir David Lean, 1908-1991, 영국)경이
미국의 ‘오클라호마(Oklahoma.1955)’
성공을 보고나서 자신도 본격적인 대형 영화로
기획을 하여 70mm 필름에다 RCA가 개발을 막 마친
6본 트랙(6-Track)의 음향시스템까지 추가하여
개봉을 한 이 작품, ‘콰이 강의 다리’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더군다나 다음 해인 1958년의 제30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무려 7개 부문의 수상을 하고 나서는 차기작들도 무조건
대형화면으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물론 이 작품의 기술적인 제작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런 힘들었던 제작 경험들이
그의 크나 큰 자산으로 변하여
‘아라비아 의 로렌스 (1962)‘,
‘닥터 지바고(1965)’
‘라이언 의 딸(1970)‘ 순으로
연이은 70mm 대작 흥행의 기틀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70mm로 개봉되지 않았고,
또 대한극장이 아닌 광화문 사거리의 국제극장에서 개봉)




전쟁을 하다보면 때로는 영웅도 엉뚱하게 탄생하나 보다.
사병출신이지만 편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기 위해,
장교 출신 행세를 하는
시얼즈(Mr. Shears-William Holden. 1918-1981. 미국).
1968년의 히트작,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원작자이기도 한 프랑스 아비뇽 출신의 소설가,
삐에르 불(Pierre Boulle, 1912 – 1994. 프랑스)
1952년에 발간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의 주인공,
이 시얼즈는 끊임없이 포로수용소 탈출을 시도하고,
마침내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을 한다.
하지만 그곳의 지리를 잘 안다는 죄(?)로
다시 그 수용소로 잠입하라는 특공임무를 맡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그 임무를 맡지 않으려고
뺀질거리게 되지만, 결국은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하게 된다.



한편 일본군에게 잡혀 비록 몸은 포로수용소에 있지만
결코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영국군 장교,
니콜슨 대령 (Nicholson - Alec Guinness, 1914-2000, 영국)
역시 또 한명의 주인공으로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위의 사진)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삐딱한 그의 행동이
당시의 관객들에게 하나의 논쟁거리도 만들어 주었다.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
그가 심혈을 기우려 만든 다리(아래 사진)를
폭파하려고 하니 아군이든 적이든 관계없이 일단은
저지부터 해야 되는 걸로 순간적인 판단 착오를 한
모양이지만, 결국은 죽어가면서야
“내가 뭘 한 거지?“ 라고 말하며 바른 상황 판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니콜슨 대령의 그 이상한 행동만 아니었더라도
우리들의 주인공 시얼즈는 죽지 않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순진하였던) 당시의 관객들에게 주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어쨌든 실제로 큰 통나무들로 (세트를)만들고
또 한순간에 폭파를 시켜 버린 이 다리가 놓여 졌었던
역사적인 콰이(Kwai) 강
그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유유히 태국의 중서부지방을 흐르고 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이었는지, 정작 이 영화의 촬영은
당시 영국 식민지였었던 실론(Ceylon/현재 스리랑카)의
열대 밀림 속에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정글속의 무더운 날씨에 영국군 포로들이 힘든 노역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올 때, 대열을 맞추어 행진을 하면서
휘파람을 다 함께 불던 곡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곡인
그 유명한 ‘리버 콰이 마치(River Kwai March)’ 이다.
1946년부터 영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영국 출신의 또 한 명의 거장, 작곡가,
말콤 아놀드 (Malcom Arnold, 1921-2006. 영국)
전체 오리지널 스코어(OS)를 만들었고,
또 당시에 유럽뿐 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대단하던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Royal Philhamonic Orchestra)이
직접 OST를 녹음을 하여 더욱 화제였었다.
그런데. ‘리버 콰이 마치(River Kwai March)’는 일명,
‘보기 대령 행진곡(Colonel Bogey March)'
이라고 불리는 영국 행진곡의 테마(Theme)를 인용한 것이다.
오리지널 ‘보기 대령 행진곡(Colonel Bogey March)'
영국 육군 군악대의 단장을 지냈고, 행진곡들을 많이
작곡을 한 (그래서 별명이 ‘British March King‘)
케네스 알포드(Kenneth J. Alford. 1881-1945)
(본명: Frederick Joseph Ricketts) 작곡을 하여
이미 1914년에 발표가 된 곡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밋치 밀러(Mitch Miller)합창단
버전이 가장 큰 히트를 하였었다.

* ‘리버 콰이 마치(River Kwai March)’ 가 나오는 장면:


* 1914년 오리지널 ‘보기 대령 행진곡(Colonel Bogey March)':


* 밋치 밀러(Mitch Miller) 합창단 버전:


어쨌든 이 유명한 주제곡은 이 영화의 개봉 이후에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얻으면서,
국군의 날 행진이나 학교 운동회 때 그리고
무슨 신나는 행사에는 반드시 등장을 하던
경쾌한 행진곡의 아이콘으로 변모하였다.
2004년에도 빈병들이 쭉 늘어 서있는 공익광고,
“쓰레기는 다만 재활용 될 뿐이다.”에서도
배경 음악으로 쓰이던데,
그나저나, 요즈음, 초딩 꼬맹이들의 운동회 때에는
무슨 행진곡이 쓰이는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



* 관련 동영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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