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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화 관객 2억명<뉴스 스크랩>

김제건 2013. 12. 26. 10:11

2013년 영화 관객 2억명

입력 : 2013.12.18 /오태진 위원 기사 스크랩

 

1960년대 지방 소도시 그 극장은 영화 두 편을 연달아 틀어주는 동시상영관이었다. 필름이 전국을 돌고 거기까지 오느라 낡아빠져 스크린에 늘 비가 내렸다. 그나마 걸핏하면 끊겼다. 영사실 아저씨가 부랴부랴 필름을 잇는 사이 암흑에 갇힌 사람들이 손가락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른들은 객석에 앉은 채로 담배를 피웠다. 발밑으로 쥐가 기어다녔다. 구석진 통로엔 지린내가 났다.

 

▶한참 영화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스크린이 환해지곤 했다. 극장 직원이 입구 휘장을 열어젖히고 "○○○씨 면회요" 외쳤다. 관객 중에 누군가를 가족이 찾으러 왔다. 사람들은 영화 보다 말고 합창하듯 소리쳐 대꾸했다. "월남 갔다~." 그러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킥킥거렸다. 어릴 적 동네 극장은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만큼 낭만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극장과 영화에 관한 원초적 추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만물상 일러스트
 

 

 

▶중학교 땐 단체 관람을 자주 갔다. 입장료를 절반만 내고 '벤허'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를 봤다. 조무래기들이 '로렌스'나 '지바고'의 복잡한 시대 배경을 알 리 없었다. 이상한 영웅 로렌스를 연기한 영국 배우 피터 오툴만은 오래 남았다. 투명하도록 푸른 눈으로 면도날같이 예리하고 이중성격자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했다. TV가 '로렌스'를 '벤허' '지바고'와 함께 명절마다 단골로 내보내면서 오툴은 더욱 친숙했다.

 

 

▶피터 오툴이 여든한 살로 떠났다. 그는 철없던 '할리우드 키드' 시절의 한 상징이었다. 매끈한 복합상영관 세대는 모를 옛 극장 풍경이 떠올랐다. 어제 아침 신문에 또 하나 영화 소식이 실렸다. 작년 1억9500만명이었던 극장 관객이 처음으로 올해 2억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한국 영화가 작년에 이어 1억 관객을 넘기며 이끌어낸 기록이다. TV·비디오·인터넷이 등장할 때마다 극장이 시들 거라고들 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안방에서 척척 보는 시대에도 극장은 더 붐빈다.

 

▶몇 년 전 나이 쉰이 다 돼 극장에서 '레이'를 보며 울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보던 아홉 살 때처럼. 레이 찰스의 흘러간 노래들 '올디스(oldies)'와 함께 그의 굴곡진 삶을 따라가며 소름이 돋았다. 옆자리 아내에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중에 집에서 DVD로 '레이'를 봤다. 감동이 영화관 반의반도 안 됐다. 사람들은 어두운 좌석에 몸을 묻고서 울고 웃는다. 극장은 관객과 영화를 한몸으로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영원한 '꿈 공장'이다.

오태진 |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