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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 339만… '아트버스터(Art Buster·흥행에 성공한 예술영화)'에도 흥행공식 있다

김제건 2014. 10. 22. 17:38

 

 

입력 : 2014.10.22 15:34

 

①팬층 두터운 감독·배우 있고 ②사회적 메시지 맞아떨어져
③관객도 공감할 이야기의 힘 ④젊은 여성 지적 허영 건드려야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비긴 어게인'은 20일 현재 관객 339만명을 넘어 흥행 질주 중이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가 한국 예술영화 수입사들 사이에 돌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초. 예술영화는 통상 영화제 필름마켓에서 시사를 본 뒤에 수입 여부를 판단한다. 완성품이 없는 상태에서 흥행을 점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판시네마 백명선 대표는 달리 판단했다. "시놉이 크게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음악영화 '원스'(2007)를 만든 존 카니 감독의 작품이니 이번에도 음악이 좋을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판시네마는 그해 5월 완성도 되지 않은 이 영화의 국내 판권을 사들였고, 결과적으로 '대박'을 냈다. 판시네마 관계자는 "'믿고 보는 감독'에 대한 신뢰가 결국 흥행으로 돌아온 셈"이라고 했다.

 

 


	예술영화계 사람들은 ‘팬덤이 있는 배우·감독’, ‘시의적절한 사회적 메시지’,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의 힘’ 등을 상업영화 블록버스터 부럽지 않은 ‘아트버스터 영화’의 흥행 공식으로 꼽았다. 영화 ‘비긴 어게인’(위), ‘프랭크’(아래)의 한 장면. /판시네마·영화사 진진 제공
예술영화계 사람들은 ‘팬덤이 있는 배우·감독’, ‘시의적절한 사회적 메시지’,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의 힘’ 등을 상업영화 블록버스터 부럽지 않은 ‘아트버스터 영화’의 흥행 공식으로 꼽았다. 영화 ‘비긴 어게인’(위), ‘프랭크’(아래)의 한 장면. /판시네마·영화사 진진 제공

예술영화판에서는 '아트 버스터(Art Buster)'라는 용어가 익숙하게 사용된다. 분명 예술영화(Art Movie)인데, 비용 대비 성과를 고려할 때 블록버스터(Blockbuster) 부럽지 않은 흥행 성적을 내는 영화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에도 '흥행 공식'이 있을까? 영화사 관계자들은 저마다 다른 '주관식 답안'을 내놨다.

믿고 보는 감독·배우 잡아라

영화사 대표들은 우선 "한국의 예술영화팬들이 선호하는 감독·배우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9월 25일 개봉해 지난 19일까지 2만9000여명의 관객을 모은 독특한 음악영화 '프랭크'는 영화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가 주연 배우 마이클 패스빈더를 믿고 구매한 경우다. 김 대표는 "여성 팬이 두터운 패스빈더가 가면을 쓰고 나오는 팬시함에다 음악영화의 장점 등에 주목한 것"이라고 했다. 진진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을 믿고 산 '문라이즈 킹덤'이나, 그린나래 미디어가 개봉했거나 개봉 예정인 '지미스 홀'(켄 로치 감독), '투 데이즈 원 나잇'(다르덴 형제 감독, 마리옹 코티아르 주연) 등도 이런 '믿고 보는 감독·배우'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비긴 어게인' 339만… '아트버스터(Art Buster·흥행에 성공한 예술영화)'에도 흥행공식 있다

 

 

사회적 메시지 맞아떨어지면…

꾸준히 흥행되는 예술영화로서 '아트 버스터'로 불리려면 대개 5만명 정도는 들어야 한다는 것이 예술영화계의 중론. 어린 여자아이를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쓴 남자 매즈 미켈슨의 분투기 '더 헌트' 등을 수입한 엣나인 필름 정상진 대표는 "개봉 당시 우리 사회의 관심사, 사회적 메시지 등이 맞아떨어지는 영화들을 선호한다"고 했다.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의 경우 영화사 식구들은 전부 반대했지만 내겐 너무 중요하고 꼭 해야만 할 영화였고, 결과적으로 흥행도 됐다. 그럴 때 예술영화 하는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적 허영·감성 건드리는 스토리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아트버스터의 흥행 공식'에 정답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 그린나래 미디어 유현택 대표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관객도 공감한다. 결국 아트버스터 흥행을 이끄는 것도 '이야기의 힘'"이라고 했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14만명,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가 8만명 든 것도 결국 '공감력' 있는 서사의 힘 덕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린나래의 최근 개봉작 '프란시스 하'는 유명 배우·감독 없는 흑백영화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8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찾아다니며 보던 마니아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20~30대 여성 관객의 지적 허영·허세를 건드려주는 것이 주요 마케팅 포인트가 된 점은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진진 김난숙 대표는 "늘 새롭고 겸손하지 않으면 '물건'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 보람도 있는 것이 예술영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