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1950년대

로마의 휴일 / Roman Holiday 리뷰(Behind The Scenes) + 동영상 모음

김제건 2013. 4. 20. 21:15
로마의 휴일 / Roman Holiday 리뷰(Behind The Scenes) + 동영상 모음
1953년/ 감독: William Wyler /주연: Audrey Hepburn + Gregory Peck
음악: Georges Auric /118분



언제부터인가 ‘공주병’이라는 희한한 신조어가
우리나라에서 유행을 하면서, 공주(Princess)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이 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공주라고 하면 여전히 예쁘고,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아직까지도 설레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빠리에 위치한 프랑스 미용가 협회라는 곳에서는
가꾸지 않아도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는 미인들의 순위를 발표했는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 벨지움)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바 있지만, 이 헵번은 또한 공주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순위의 1위에도 이미 오래전에 선정된바 있었다.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그녀의 첫 번째 성공작인 이 작품에서의
이미지가 그녀의 평생토록 또 이렇게 사후에도 매우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렇듯이 개봉이 된지 반세기가 훌쩍 넘은 불후의 고전 명화,
이 ‘로마의 휴일’이 지니고 있는 영화사적인 공로의 제1순위는 아무래도
‘핵폭탄 급의 요정’인 신데렐라 스타, 오드리 헵번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부유한 영국인 은행가 아버지와 네덜란드 귀족 출신의 어머니사이에서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난 본명이
오드리 캐스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인 그녀는
10대 소녀기를 나치 치하의 네덜란드에서 무척 고생을 하며 보내면서도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는데, 종전 후엔 런던의 발레학교의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면서, 모델로도 활동을 하게 된다.
1948년, 단역으로 영화계에 모습을 들어 낸 이후,
1951년의 ‘Young Wives Tale’를 비롯하여, 같은 해에만 다섯 편의 영화에
조역으로 출연을 하였으나,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녀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지지(Gigi)’에 출연하면서 미국상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로마의 휴일’의 스크린 테스트를 받으면서 거머쥔 뜻밖의 행운은
단숨에 미국 아카데미상의 여우주연상을 이 작품으로 인해 받으며
계속해서 이어지고, 연이은 사브리나 (Sabrina. 1954)의 히트로
마치 혜성과도 같은 만인의 연인이 된다.
1954년에 결혼을 하였던 배우, 멜 훼러(Mel Ferrer)와는 1968년에 이혼을
하고, 그 다음 해에 안드리아 도티(Andrea Dotti)와 재혼(1982년 이혼)을
하면서 그녀는 할리우드를 떠난다.
그리고,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1989)’를 포함한 세 편의 영화에
다시 잠깐 씩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유엔 산하기관 유니세프의
특별대사로 봉사를 하던 1993년에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슬하에 두 자녀).



스위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당시엔 독일의 영토였던 알사스에서 태어난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1902-1981, 독일)
192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자마자, LA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면서 영화를 배우다, 23세의 어린나이에 벌써 ‘Crook Buster(1925년)’
라는 서부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다.
이후, 그의 생애 최고작인 된 ‘벤 허(Ben-Hur. 1959년)’를 포함해
70편에 가까운 명작들을 만들어 내었지만, 아무래도 코미디 스타일의
영화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이 작품이 와일러의 첫 코미디).
그러던 그가 후랭크 캐프라(Frank Capra) 감독이 이미 사양한바
있는 이 작품을 선뜻 맡게 된 것은 이 영화 각본의 원작자인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 1905-1976, 미국 콜로라도)
처한 곤경을 친구로서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0년대 초, 할리우드에 매카시 선풍이 한참일 때, 좌익분자의
블랙리스트에 첫 번째로 올라, 1년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가명으로 집필한 이 작품의 고료 5만 달러가 당시에 트럼보의
가족들에게는 매우 절실했었다고 한다.
(2015년 작, “트럼보(Trumbo)“참조/이 작품을 포함하여 그가 차명으로
발표한 18개의 각본의 정확한 원작자 이름은 그의 사후 2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서야 제대로 정정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언 맥레런 헌터(Ian Mclellan Hunter)라는 이름을 차용한
탁월한 시나리오를 읽은 와일러 감독은 이 영화에는 남녀 주연배우가
특히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당시의 여러 스타들과
접촉을 하였으나 이내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우선 남자 주인공으로 쉽게 응했었던 캐리 그랜트(Cary Grant)가
대본을 읽고 난 후, 출연을 포기했으며,
진 시몬즈(Jean Simmons)와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와의 출연료 협상 역시 순조롭지 않자,
와일러 감독은 아예 신인 여배우를 물색하게 되었고,
그래서, 입소문을 타고 뉴욕에서 할리우드 영화계로 알려지기
시작한 오드리 헵번과 드디어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이었다.
1950년대의 전 세계 영화계는 마릴린 몬로(Marilyn Monroe)나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같은 글래머 스타일의 여배우들이
대중들의 환영을 받던 시기였다.
그래서 170Cm의 껑충한 키에 가슴과 엉덩이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 깡마른 반 글래머적이고 반 할리우드적인 24세의 신인, 헵번을
일약 주인공으로 기용한다는 것이 그 당시로서는 무지무지한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러기에 그레고리 펙도 인정을 한 와일러 감독의 선견지명은
오히려 더욱 더 높이 평가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 아카데미상의 의상부문에 무려 24번이나 후보였었고,
또 평생에 7번이나 수상을 한 할리우드의 명 디자이너,
에딧 헤드(Edith Head. 1897-1981, 미국 CA)
창조해낸 헵번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살린 의상이야말로
신데렐라 탄생의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는데,
이후에 이 헵번은 프랑스의 지방시(Hubert De Givenchy)와의
협력으로 ‘오드리 헵번 룩’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새로운 유행 패션까지도 창조하게 된다.



유럽 각국을 순방하면서, 런던, 암스텔담, 빠리를 거쳐 로마에 도착을 한
앤 공주(Ann, Audrey Hepburn, 1929-1993, 벨지움)
잠시도 쉴 수가 없는 꽉 찬 스케줄에 진절머리를 내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당황한 시종들은 의사를 통해 진정제를 주사하고 푹 잘 것을 권유하였는데,
창밖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녀는 무작정 밤거리로
뛰쳐나간다.
한편, 어메리칸 뉴스 서비스에서 일을 하는 미국인 기자,
조 브래들리(Joe Bradley, Gregory Peck, 1916-2003 미국 LA)
동료들과 포커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술에 취한 듯한 한 여성이
길에 누워, 횡설수설을 하는 것을 보다 못해, 결국 자기의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같은 시간,
공주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왕실에서는 대사관 대변인을 통해 공주의
갑작스런 발병소식을 공식 발표하고, 이는 모든 조간신문의 머리기사가 된다.
다음날, 늦게 출근을 한 조는 신문에 난 공주의 사진을 보고선
거금 5천 달러에 자기가 특종 인터뷰기사를 쓸 것을 상관에게 약속을 한 후,
동료인 사진기자, 어빙(Irving, Eddie Albert, 1906-2005, 미국)에게
만사를 제쳐놓고 지금 빨리 달려오라고 전화를 한다.



오후 1시 반이 되어서야 잠에서 깬 앤 공주는 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약간의 돈을 빌린 후, 그토록 원하던 평민으로서의 자유로운 시간을
오후에 혼자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과 관광지를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에서는
머리도 아주 짧게 잘라 버린다
(헵번의 이 숏커트 헤어스타일은 한동안 전 세계 여성들에게 태풍과도
같은 큰 유행이 되었었다)

몰래 미행을 하던 조는 스페인광장의 층계에서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공주와 다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접근을 한다.
그리곤 그녀가 하고 싶다는 일을 함께 하자고 제의를 하면서,
어빙이 몰래 사진을 찍는 가운데, 스쿠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공주를 찾기 위해 본국에서 온 비밀요원들과 한바탕 치고 받는 난리를
치루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둘은 급기야 사랑을 느끼게 되고 키스도 나누게 되지만,
뉴스를 듣고 난 공주는 밤에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차안에서 조에게
작별을 고한다.
다음날 오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열린 앤 공주의 기자회견장.
기자들 사이에 서있는 조를 발견한 공주는 각 국가 간의 친선문제를
묻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조를 바라보면서,
‘사람들 간의 믿음(Faith In Relations Between People)‘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매우 중요하다는 (조에겐 암호와도 같은) 동문서답을 하고,
로마야말로 평생 잊을 수가 없는 도시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어빙이 기념품이라고 전해준 사진을 잠시 훔쳐보고는,
조에게 눈길로 다시 인사를 전한 후 우아하게 퇴장을 한다.

(아래 영상이 헵번의 매력이 넘쳐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필수 감상)




영국왕실에 관한 이야기는 21세기 아직까지도 여전히 서구의 신문지상에서
환영을 받는 기사이지만,
이 영화가 개봉이 될 때쯤, 이 영화의 줄거리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우연히 영국에서 발생을 하면서 이 영화가 더욱 더 화제가 되기도
하였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인 마가렛(Margaret)공주가 평민이자 또 이혼남인
피터 타운센드(Peter Townsend)와 사랑에 빠졌다는 기사들이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이 영화가 저절로 자동 홍보가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실패로 돌아간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였다는
비난까지도 받았는데, 다행히 이 영화가 먼저 기획 제작이 되었기에
그 이상 불필요한 오해는 받지 않았지만,
다이애나 비를 죽음(1997년)에 이르게 한 파파라치들이 우글거리는
오늘 날과 비교를 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동화 같이
순수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로 치자면, 평생 먹고 살고도 남을 큰돈이 걸렸을 기사와 사진을
포기한 조와 어빙의 선행(?)은 아무리 영화라 해도 이제는 다시 만들어
질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나 바로 그런 점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이 작품을 불후의 고전으로 만든 순수의 힘이 아니겠는가?



미국인들이 무척이나 선호하는 빠리를 배경도시로 한 수십 편의 할리우드
영화들과 같이, 로마에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게 만든 이 작품 역시,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콜로세움
(Colloseo),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a),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천상의 성(Castel Sant' Angero), 소망의 벽,
바티칸
등의 관광명소들에서 촬영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대리관광의 즐거움도 선사하였지만, 당시 할리우드로서는 보기
드문 100% 현지촬영도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로케이션 외의 세트 촬영은 로마의 시네치타(Cinecitta)스튜디오]
트레비 분수에서 조가 카메라를 빌리려고 하는 학생들로 어린 두 딸을
직접 출연시킨 완벽주의자, 와일러 감독은 어느 장면에서는 무려 46회나
재촬영을 거듭하였다지만, TV 쇼의 명 사회자이기도 했던 스캘튼(Red
Skelton)의 옷 속에 손을 감추는 개그를 흉내 낸 ‘진실의 입 앞에서의
시퀀스’는 단 한번 만에 오케이사인을 주었다고 한다.



1954년, 제26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무려 10개 부문에 후보가 되어,
의상 디자인상, 여우주연상, 스토리 저작 상, 3개를 수상한 이 작품에서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컬러로 제작을 할 수도 있었는데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낸다고 일부러 흑백 필름으로 촬영을 한 점과
그리고 영화음악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부터 벌써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Caesar And Cleopatra.1945)‘, ’물랑 루즈(Moulin Rouge.1952)‘등으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던
조르주 오릭(Georges Auric. 1899-1983, 프랑스)
작곡을 한 오리지널 스코어(OS)는 우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말괄량이 같던
앤 공주의 이미지와 또 그녀가 평생 처음으로 느끼게 된 조와의 반짝
사랑을 음악적으로 표현은 잘 하였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특별히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히트를 한
음악은 없다.
다만 앤 공주를 다시 숙소 앞으로 데려다주고, 차안에서 이별의 아쉬움을
포옹과 키스로 달래던 영화 후반부에서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사랑의 테마(Love Theme)’만이
그나마 좀 알려져 있을 뿐인데, 현악기들이 표현을 하는 그 잔잔한 애절함이
고전영화로서의 1940-50년대 당시의 영화음악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전체의 '메인 테마(Main Theme)‘
로마의 유명 관광지를 배경화면으로 한 오프닝 타이틀(아래의 예고편 음악
참조) 때 흐르던 곡으로서, 마치 여행 출발 전의 설레임 같은 느낌을 주는
훌륭한 곡이지만, 이 역시도 대중적으로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프렌치 키스(French Kiss.1995)’와도 같이 만일에 이 영화가
오늘날에 제작이 되었다면, OS와 함께 적어도 10곡이상의 삽입곡들을
사용하면서, 영화 음악적으로도 큰 성공을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은 그래서 더욱 더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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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197번째 영화리뷰. revised. April. 2018.